"먹튀 취급하다니" 격분한 하림…HMM 인수전 이렇게 끝났다

입력 2024-02-07 15:58   수정 2024-02-07 22:22

이 기사는 02월 07일 15:5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를 마치 도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아홉번 양보했는데 마지막 한 발까지 물러서라는 게 협상입니까."

6일 오후 서울 논현동 하림 본사 사옥. 이곳에 모인 하림그룹 임원과 JKL파트너스 관계자들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협상 마지막 날 모인 이들 앞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굴욕적으로 HMM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매각 측이 전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놓지 않았다. 양측의 교섭은 6일 오후 2시에 깨졌고 기다림이 이어졌다. 기다림 끝에 오후 7시 결국 협상단은 뿔뿔이 흩어졌다. HMM 인수 작업이 실패로 귀결된 순간이었다.
하림 "굴욕스러운 계약 이어갈 수 없어"·매각 측 "판 깰 이슈 아냐"
인수 협상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남은 영구채 1조6800억원어치의 주식 전환을 3년 뒤로 미뤄달라"는 하림의 요구로 양측은 시작부터 파열음을 냈다. HMM 경영 주도권 확보 여부도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림은 조단위 자금을 들여 HMM을 인수하는 만큼 회사의 독립적 경영을 보장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HMM 대주주인 해양진흥공사는 이를 거부했다. HMM이 한국 해상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상당한 만큼 앞으로도 경영에 일부 관여해야 한다고 맞섰다.

매각 측의 의사가 완고하자 하림은 위 요구를 상당수 수용하기로 했다. 영구채 전환 시점 유예를 고수하지 않기로 했다. 해양진흥공사는 영구채의 주식 전환에 따라 매각 이후에 HMM 지분을 10% 이상 확보할 전망이다. 하림은 해양진흥공사의 지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HMM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수용할 뜻도 내비쳤다.

하지만 하림·JKL파트너스는 매각 측의 마지막 요구에 폭발했다. "JKL파트너스는 5년 동안 HMM 지분 매각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달라"는 매각 측에 요구였다. 인수 측 관계자는 "인수자를 '먹튀'로 몰고 가는 매각 측의 편견을 참기 어려웠다"며 "굴욕스러운 요구를 수용했지만, 이것 만큼은 참기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매각 측은 하림의 태도 변화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JKL 5년간 HMM 주식 매각금지' 조항이 협상을 깨기는 너무나 사소한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협상 마감을 앞둔 지난 5일 구두 협상에서도 JKL을 둘러싼 조항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교섭이 진행됐다. JKL이 조달하기로 한 7000억원의 공백을 채우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하나은행이 언제든 HMM 인수금융을 제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은행은 HMM 인수 후보 가운데 동원그룹에 인수금융을 대기로 한 바 있다. 동원그룹이 인수전에서 이탈하자 하나은행은 하림에 손을 내밀 준비를 했다.

하림 측이 강경한 태도로 돌변하자 JKL 부분을 제외한 모든 핵심 사안에서 양보를 끌어낸 산업은행 관계자들도 당혹해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들은 투자금 회수가 생명인 사모펀드 특성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만큼 JKL에 대한 요구가 불합리하다는 데도 공감했다. 하지만 해양진흥공사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면서 협상은 꼬였다. 해진공은 "HMM 주가가 2만원까지 올랐다"며 "JKL 등이 당장 팔아 차익을 내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느냐"며 완강한 태도를 유지했다. 해진공은 JKL파트너스에 김홍국 회장의 아들이 근무하는 점을 들어 '이해 상충' 문제까지 제기했다.
하림, 신뢰 하락 자초..."산은·해진공 공동 매각 구도는 깨야"
하림이 처음부터 협상 전략을 잘못 짰다는 시각도 있다. M&A 입찰 경쟁에 여러 번 참여한 김 회장은 '벼랑 끝 전술'을 주로 구사해왔다. HMM 본입찰 당일에도 돌연 "참여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자문사까지도 애타게 했다. 경쟁사인 동원이 입찰 서류를 낸 것을 확인한 끝에 산업은행 본사에 미리 보내놓은 직원에게 지시해 제안서를 냈다.

하림그룹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과거 팬오션 입찰에서 경쟁사였던 KKR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며 "높은 금액을 써온 척하면서 빈 007가방을 가지고 협상장에 들어온 KKR을 보고서는 모든 거래에서 속내를 숨기는 데 열중했다"고 말했다.

영구채 유예, 주주 간 계약 해제 등을 포함한 매각 측의 요구안이 알려진 이후에도 하림 측 관계자들은 "협상은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내고 좁혀가라고 있는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가 하림그룹을 둘러싼 자금조달 의구심에 불을 지폈다. 하림의 경쟁자였던 동원그룹은 "요구를 수용하는 하림이 배당을 더 받아 갈 수 있고, 실질적인 인수 자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법정 대응까지 언급하며 반발했다. 이는 매각 측의 운신을 더욱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년 넘게 이어진 국적 해운사 HMM 매각 작업은 이렇게 허무하게 공중분해됐다. 금융 논리를 앞세운 산업은행과 산업 논리를 우선한 해양진흥공사가 함께하면 매각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금력이 탄탄한 인수자를 끌어내는 사전 작업 없이는 매각이 표류할 수 있다는 교훈도 남겼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실패를 계기로 산업은행이나 해양진흥공사 한쪽이 거래를 위임받아 주도해야 한다"며 이 같은 변화 없이는 어느 기업도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고 앞으로 재매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 박종관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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